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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9 오후 2:05:52ㅣ조회:2638]
개츠비 3金시대 
누구의 개츠비를 읽을 것인가
‘타임’ 선정 현대 100대 영문소설. ‘뉴스위크’ 선정 100대 명저. BBC 선정 필독서. ‘옵서버’ 선정 ‘인류 역사상 가장 훌륭한 책.’

F.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 쏟아진 찬사들이다. 피츠제럴드의 3번째 장편소설인 이 작품은 미국에서 1925년 출간됐으나 작가 사후(死後)에야 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피츠제럴드는 자신의 대표작이 ‘낙원의 이쪽’인 줄로 안 채 사망했다.)

88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 작품은 서점의 가장 좋은 위치에 진열돼 해마다 미국에서만 30만 권 이상 팔린다.

대공황 직전의 미국을 다룬 작품이지만 동양권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다.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대표작 ‘상실의 시대’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었다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문장이 등장하는 것은 잘 알려진 얘기다.

한국에서도 이 작품은 20여 명 넘는 번역가에 의해 번역출간 됐다. 피츠제럴드가 1940년에 사망함에 따라 그의 작품에는 저작권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전설이 돼버린 이 작품에 다시 한 번 스포트라이트가 꽂히고 있다. 한국에서 지난 5월 16일 개봉한 영화 덕분이다.

‘물랑 루즈’를 연출한 바즈 루어만 감독, ‘타이타닉’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이 의기투합해 제작한 영화 ‘위대한 개츠비’는 ‘아이언맨3’가 장악했던 흥행 구도에 균열을 내며 단숨에 화제를 모았다. 이에 따라 소설에도 다시 한 번 뜨거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수십 개의 번역본 중에서 베스트셀러 차트 상위권 ‘생존’에 성공한 것은 이른바 3金 번역가의 세 가지 버전이다.

김욱동(민음사), 김영하(문학동네), 김석희(열림원)의 번역은 각자 그 나름의 개성과 관점을 가지고 미국 문학사의 명작을 해석하고 있다. 각 번역가의 관점과 특성을 비교하며 개츠비 열풍에 접근해 본다.

친절한 해설가: 민음사의 김욱동




한국외국어대 영어 통번역학과 교수인 김욱동이 ‘위대한 개츠비’를 처음으로 번역한 것은 2003년이었다. ‘원문의 향취를 가장 잘 살려낸 번역’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그는 2010년에 다시 한 번 개정번역에 도전했다. 5월 30일 현재 인터넷 서점 YES24 기준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고 있다(알라딘 2위, 교보문고 4위).

그의 번역은 영화든 소설이든 ‘위대한 개츠비’라는 작품을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사람이 처음으로 읽기에 가장 적합하다. 기교를 최소화하며 담백한 번역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 피츠제럴드의 인생을 염두에 둔 ‘해설’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페이지 곳곳에 풍부한 각주(脚註)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피츠제럴드식(式) 비유나 상징을 풀어서 설명해주고 있다. 등장 인물들의 생김새나 성격이 피츠제럴드의 실제 주변 인물들과 어떻게 엮여 있는지도 밝히고 있어 색다른 재미를 준다. 개츠비를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가장 적합한 번역이기도 하다.

멋스러운 이야기꾼: 문학동네의 김영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오빠가 돌아왔다’ 등을 쓴 바로 그 김영하다. 번역을 완료한 것은 2009년.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에 유명 작가가 도전한 것만으로도 화제가 됐다.

김욱동이 ‘대세’였던 베스트셀러 차트 역시 영화 개봉 이후부터 김영하 버전의 강세 구도로 반전되고 있다(5월 30일 현재 알라딘 1위, 교보문고 2위, YES24 5위).

김영하의 관점으로 개츠비를 해석하고 있는 번역 후기 역시 흥미롭게 읽힌다. 그는 주인공 닉과 개츠비, 그리고 개츠비와 데이지가 존댓말을 하는 것으로 설정돼 있던 기존의 번역을 반말 대화로 바꾼 이유를 밝히고 있다.

한국말에 내재된 말의 위계가 인물들을 경직시켜 놓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김영하의 설명이다. 단순한 호칭의 변화처럼 보이지만 이 변화는 인물간의 관계를 바라보는 독자의 관점을 크게 변화시키는 묘수로 작용한다.

다만 피츠제럴드의 개성과 김영하의 개성이 곳곳에서 얽히고 있다는 점은 의역(意譯)의 과잉을 염려케 만든다. 각주도 거의 없어 미국의 문화나 피츠제럴드의 인생에 밝지 않은 사람은 작품의 핵심에 접근하기 힘든 구석도 있다.

번역가의 유명세 덕에 많은 시선을 받고 있긴 하지만 사실은 개츠비를 2번 이상 읽은 사람들에게 적합한 번역으로 보인다.

명석한 번역가: 열림원의 김석희




제1회 한국번역상 대상을 수상하고 ‘로마인 이야기’를 번역하는 등 한국의 대표적인 번역가로 꼽히는 김석희 역시 개츠비에 도전했다. 그는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작가 출신의 번역가다.

올 봄에 나온 김석희 버전의 개츠비는 아직 차트에서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는 못하고 있으나 이야기의 맥을 가장 세심하게 고려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를 테면 주인공 닉과 느슨한 사랑의 감정에 빠지게 되는 조던 베이커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보자. “exchanged a short glance consciously devoid of meaning”라는 표현이 있다. 여타의 번역가들은 “의미 없이 시선을 주고받았다”는 정도로 번역한 부분이다.

김석희는 이 문장을 “베이커와 나는 의미 있는 눈길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잠깐 눈길을 나누었다”고 번역했다. 두 인물의 성격과 향후 줄거리를 감안했을 때 가장 생동감 있는 선택으로 보인다.

‘위대한 개츠비’의 백미로 꼽히는 마지막 문장 역시 두 개로 끊어서 리듬감을 살렸다. 탄탄한 완성도를 자랑한다는 점에서 ‘생애 마지막으로 읽기에 가장 적합한 개츠비’는 김석희의 것으로 보인다.

바즈 루어만의 영화 ‘위대한 개츠비’ 역시 놓칠 수 없다. 영화는 피츠제럴드의 원작을 상당히 충실하게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이해되지 않았던 장면들이 영화를 통해서 이해되기도 한다. 재즈의 시대를 다루고 있음에도 현재 유행하고 있는 스타일의 음악을 다수 삽입한 것도 이채로운 효과를 낸다.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남자 제이 개츠비가, 속수무책인 여자 데이지에게 빠져 돌이킬 수 없는 인생의 건너편으로 진입하는 이야기 - 위대한 개츠비. 피츠제럴드의 인생과도 닮아 있는 이 이야기에 21세기의 번역가와 예술가들이 다시 한 번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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