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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19 오후 3:13:02ㅣ조회:1717]
발해를 키워 신라 부정하는 법륜? 
북한정권 정통성 인정위해?
南北관계의 본질은 민족사적 정통성과 삶의 방식을 놓고 다투는 타협이 절대로 불가능한 총체적 권력투쟁이다. 대한민국 헌법도 이러한 역사관에 입각하여 북한지역을 대한민국 영토의 일부로 선언, 북한정권을 反국가단체로 규정한 것이다. 북한정권이 민족사의 정통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자는 대한민국 국민의 자격이 없다.

‘안철수의 멘토’로 알려진 승려 법륜(現 평화재단 이사장)은 신라 삼국통일의 의의를 貶下(폄하)하고 한반도 역사의 정통성이 고구려와 발해에 있다는 억지를 펴고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북한정권에 정통성이 있다는 발언을 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법륜은 1988년 ‘정토회’라는 참선과 수행을 목적으로 하는 불교단체를 설립했다. 정토회는 현재 한국 古代史(고대사) 기행과 역사강연 등을 기획, 청년들을 모으고 있다. 이 단체는 27개 국내 지부와 18개 해외 지부 등을 두었다. 법륜은 또 2004년 평화재단을 설립, 통일문제에도 관여하고 있다. 이 단체는 북한 어린이들에게 식량 보내기 등 對北(대북)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으며, 각종 보고서 발간과 세미나도 주관한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안철수를 대권후보 반열에 올려놓는 데 영향을 끼친 ‘청춘콘서트’의 기획을 담당한 단체가 바로 평화재단이라고 한다. 법륜은 현재 평화재단을 비롯해 정토회, 좋은벗들, 에코붓다라는 단체의 이사장 직함을 갖고 있다.

“신라는 민족사 정통의 자격 없어”

법륜은 2009년 10월16일, 서울 서초구 평화재단에서 열린 역사특강 ‘청년, 역사를 만나다 제1부’ 강연에서 “신라는 민족사의 정통의 자격이 없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의 옛 땅 가운데 대동강 이남 일부만 차지할 수 있었다. 이것을 두고 우리가 통일신라라고 부르는데, 이 시대의 신라를 통일신라라고 부르는 즉시 발해는 우리의 역사에서 제외된다. 발해가 없다고 보면 신라가 3국을 통일했다고 볼 수 있으나 발해를 놓고 삼국통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고구려의 정통성은 발해로 갔다고 봐야 한다. 신라는 처음에 독립적 연호를 썼지만, 시간이 지나고 중국에 조공을 바치면서 연호를 없앴다. 그래서 민족사 정통의 자격이 없다. 발해는 끝까지 연호를 쓰고 독립국가로서 위상을 가졌다.” (발언출처: 2010년 1월13일字 인터넷 <한겨레신문>)

《삼국사기》‘광개토대왕’ 편에는 “광개토대왕이 재위 9년 봄 정월에 연 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했다(九年 春 正月, 王遣使入燕朝貢)”고 쓰여있다. 같은 책 안원왕(고구려 23대 왕) 本紀에도 “東魏(동위)에서 조서를 내려 왕에게 驃騎大將軍(표기대장군)을 더하고, 나머지는 모두 이전과 같게 했다. 사신을 위 나라에 보내 조공했다(四年 東魏詔加王驃騎大將軍 餘悉如故 遣使入魏朝貢)”고 기록되어 있다. 신라뿐 아니라 고구려도 중국에 朝貢을 한 것이다.

당시 고구려ㆍ백제ㆍ신라 삼국 모두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중국, 倭(왜, 注: 일본)와 활발한 교역을 했으며, 이는 상호간의 조공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 당시 조공의 의미는 ‘약한 나라가 강한 나라에 예물 등을 바치는 것’이라기 보다는 국가 생존차원에서의 교역이란 뜻이 더 정확하다. 그럼에도 법륜은 신라만 중국에 事大(사대)ㆍ굴종한 것처럼 묘사했다.

법륜은 신라가 독자적 年號(연호)를 쓰다가 없앴다고 했지만, 사실 삼국 중 독자적 연호를 가장 오랫동안 사용한 나라는 신라였다. 신라는 114년간 7개의 독자적인 연호를 썼다. 고구려는 5개의 연호를 사용했으나, 광개토대왕 때 사용했던 ‘永樂(영락)’이란 연호를 제외하고는 정확한 연대를 측정하기 어렵다. 백제는 확실하게 전해지는 연호가 아직 없다.

법륜은 독자적인 연호를 폐지했다는 이유로 신라의 역사적 의미를 평가절하했으나, 사실 신라는 황제국가로서의 位相(위상)을 지녔었다. 김창겸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신라국왕의 황제적 위상’이란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삼국유사》‘태종춘추공조’에서 당대인들이 신라를 ‘聖代’라고 한 것은 신라를 이상국가로 일컬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태종무열왕의 太宗이라는 諡號(시호)는 황제의 시호였다. 이때 당에서 이 시호를 폐지하라는 압력을 가했으나, 신라는 이에 굴하지 않았다. 황복사금동사리함명문에서 효소왕의 어머니를 ‘神穆太后’라고 표현하였다. 그리고 스스로 朕(짐)이라 했고 죽음을 崩(붕)이라 했다.”

金 연구원은 “신라 국왕이 주변국을 제후국에 봉했다”며 “耽羅國(탐라국)을 속국으로 朝貢(조공)을 받았고 고구려의 귀족 출신 安勝(안승)을 고구려왕(뒤에 報德國王)으로 책봉하고 表文(표문)을 받았으며 大祚榮이 발해를 건국하자 그를 大阿湌(대아찬)에 책봉하므로써 탐라와 報德國(보덕국)과 발해를 번국으로 설정하고 그 우두머리를 제후에 임명했다”고 밝혔다. 이는 신라의 자주성과 독자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법륜은 같은 강연에서 "고구려가 멸망한 뒤 신라는 당나라가 대동강 이남 땅을 준 것만으로도 너무너무 감격했다”며 “신라는 문화적으로 뛰어나고 부유했지만 역사관이 부족해 이런 문제를 초래했다”고 비판했다(발언출처: 上同).

법륜은 신라가 당나라로부터 영토를 下賜(하사)받은 것처럼 묘사했으나, 이 또한 사실과 다르다. 사실의 왜곡 정도가 아니라 조작이다. 신라가 대동강 이남의 한반도를 영토로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唐과의 치열한 전투를 통해서였다. 신라는 매소성 전투에서 승리해 羅唐전쟁에서의 결정적 勝機(승기)를 잡을 수 있었고, 唐은 기벌포 해전에서 패해 안동도호부를 요동으로 철수시키는 치욕을 당했다. 안동도호부는 668년 고구려가 멸망한 직후, 唐이 평양에 설치한 軍政(군정)기관으로, 옛 고구려領을 집어삼킬 의도로 설치한 기관이다. 초대 도호로 임명된 唐將(당장) 薛仁貴(설인귀)는 2만여의 군사와 함께 진주하면서 고구려 땅을 9都督部(도독부)·42州(주)·100현縣(현)으로 나누어 다스릴 방침이었다. 그러나 신라와의 전투에서 패해 唐의 한반도 지배 계획은 실패하고 말았다. 법륜은 이런 사실관계는 간과한 채 민족사의 가장 감동적인 장면을 왜곡하고 自虐的으로 묘사했다.


‘신라 삼국통일’ 폄하는 북한이 조작ㆍ왜곡한 역사관과 相通(상통)

법륜이 신라의 민족사적 정통성을 부정하고 고구려와 발해에만 정통성을 부여하려는 건 북한에 정통성을 주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기 위한 의도가 아닌가 의심스럽다.

신라 이전에는 민족이라는 개념이 모호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민족은 갑자기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공통의 가치관, 풍습, 언어, 정치제도, 인종적 유사성을 가지고 함께 살아야 민족의식을 갖게 된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同族의식을 가진 민족집단이 생기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신라의 삼국통일을 기점으로 하나의 민족이라는 역사적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신라는 통일 후 약 250년간 富國强兵한 一流국가를 존속시켜 나갔다. 반면 발해는 역사 기록이 남아 있지 않고, 거란에 망한 이후 나라를 되찾지도 못하여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발해 문화는 全無하다. 언어, 성씨, 문화, 제도 중 현재까지 韓民族의 역사적 전통으로 이어지는 것은 없다는 이야기이다. 신라가 확보한 한반도란 공간은 민족의 생존 터전이 되었다. 신라어는 한국어의 原型이 되었고, 신라불교ㆍ신라의 문화재ㆍ신라의 학문과 예술 등은 한국인의 현재의 삶 속에서 면면히 흐르고 있다. 발해가 아니라 신라가 민족사의 정통이란 이야기이다.

고구려에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해 신라를 부정하는 억지도 유행이다. 고구려의 ‘對唐ㆍ對隋(대당ㆍ대수) 항쟁’을 들어 신라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일부 좌파 사학자들은 고구려가 긴 시간에 걸쳐 수나라와 당나라와 결전한 것을 근거로 민족사적 우수성과 자주성을 부각시키고 신라가 黨이란 外勢(외세)를 빌어 고구려를 쳤다고 비판한다. 삼국시대엔 민족이란 개념이 없었으므로 外勢란 말도 지금 의미로 쓰면 안 된다.

고구려가 隋·唐과 싸워 한반도를 지켜낸 것은 사실이지만 신라가 唐과 동맹한 것을 비판해선 안된다. 더구나 신라가 당의 힘을 빌어 백제, 고구려를 멸망시킨 뒤 한반도를 속국으로 만들려는 당시 세계최강의 제국 唐과 결전, 한반도를 민족의 공간으로 확보한 것을 폄하하는 것은 민족 생성의 의미를 부정하는 것이고 역사적 사실과도 부합되지 않는 일종의 自我부정이다.

중국을 통일하고 거대한 세력으로 등장한 강대국과 너무 오래 전쟁을 한 것은 고구려의 외교적ㆍ군사적 실패였다는 것이 학계의 衆論(중론)이다. 고구려가 수 및 당과 싸워 일시적인 승리를 거두긴 했으나, 결국 이 전쟁으로 망하여 한반도에서 역사적 大勢를 잡지 못했다. 약한 나라는 강대국과는 친하게 지내야 한다.

신라의 金春秋(김춘추, 太宗武烈王)와 金庾信(김유신)은 뛰어난 외교력과 군사력 및 내부 단결을 바탕으로 羅唐(나당)동맹을 결성,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리고 통일을 주도했다. 이들은 통일 이후 唐과 결전을 벌여 이 세력을 한반도에서 몰아냈다.

신라의 민족통일을 폄하하는 자들은 신라가 唐의 힘을 빌린 사실만 부각시키고 唐을 추방한 위업은 감춘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가변적 상태에 있던 한민족 국가들이 최초로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로 탄생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안정된 영토’와 ‘안정된 국가’를 구심점으로 해 민족적 정체성을 확립해갔다. 민족적 정체성 확보는 통일신라가 역사적 정통성을 확보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계속)


趙成豪(조갑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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