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칼럼 - 김동길 박사 1928년 평남 맹산 출생 연세대 부총장, 조선일보 논설 고문, 국회의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태평양시대위원회 이사장으로 있다

미국을 안좋게 말하는 사람들이 한국에도 많다. 한국의 미풍양속을 몽땅 망쳐놓은 것은 해방후 미국으로부터 쏟아져 들어온 잘못된 문화라고 믿고 있다. 오늘날 예의범절도 모르고, 버릇도 없고, 제멋대로 놀아나는 많은 젊은이들을 미워하는 한국의 노인들은 그 책임이 미국에 있다며 잘못된 것이 송두리째 미국 탓이라고 확신하고 있고, 소련이 무너지고 동구권이 몰락한 뒤에는 더욱 유·에스·에이를 증오하게 된 것 같다. 세계의 회교도들은 회교도들대로, 무신론자들은 무신론자들대로, 미국을 미워한다. 미국이 망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 지구상에는 엄청나게 많다.

미국을 미워하는 어떤 개인도 어떤 집단도, 그러나 미국의 힘을 무시하지는 못한다. 20세기가 다 저물어가는 오늘도 미국은 세계를 이끌어 나가는 최강의 나라인 것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힘 때문에 미국은 무서운 나라이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만일 미국이 끼여들지 않았다면 연합군이 과연 카이제르의 독일팽창주의를 저지할 수 있었을까. 100만명이 넘는 미국의 젊은이들이 대서양을 건너 유럽전선에 투입되었고, 연합군에 필요한 군수물자가 무제한 수송되었기 때문에 영국과 프랑스가 다 살아 남을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도 마찬가지였다. 승리의 문턱에까지 갔다고 자부하던 히틀러는 누구 때문에 패배와 파멸의 쓴 잔을 마셔야만 했는가. 미국 때문이다. 6·25전쟁 때 한반도를 공산화 일보직전에서 건져준 나라는 미국이다. 16개국의 젊은이들이 유엔의 깃발 아래 뭉쳐 대한민국을 살려주었는데, 그 승리의 주역은 뭐니뭐니해도 미국이었다.

미국은 전쟁과 분쟁의 해결사로서만 힘을 발휘한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나라들을 살려주는 일에도 큰 몫을 담당하였다. 전후에 경제난으로 빈사상태에 다다른 독일과 프랑스, 영국을 살려준 나라가 어느 나라인가. 미국이다. 일본경제도 미국이 살렸고 해방후, 그리고 특히 6·25전쟁중 우리를 먹여살린 것은 미국 아닌가.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라’는 속담이 있다. 개인적으로도 남의 약점만 들추어내는 것은 교양있는 사람들의 할 짓이 아니다.

우리는 미국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또 배워야 하는가. 미국을 오늘의 미국으로 만든 원동력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라가 방대하고, 자원이 풍부하기 때문만은 아닌 것이 명백하다. 영토는 넓고, 천연지하자원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지만, 국민의 생활은 매우 비참한 나라들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물질이 아니라, 정신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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